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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17 환자 노트 (26)
제닥은 의료 이용자 한 사람마다 하나의 노트를 만든다...는 건, 아는 분들은 아는 사실.
굳이 개인마다의 노트라는, (일면 거추장스러울수도 있는) 기록 방식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방적이고 닫힌 기록으로서의 진료 차트가 아닌, 다양하고 비정형화된 의료 이용자의 언어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기록할 수 있는 "열린 기록"으로서의 도구를 만든다는 기본 취지가 있다.
보통, 진료과정에서 의료 이용자의 두서없는 말들은 주로 의료인에 의해 차단되거나, 아니면 기록될 때 걸러져서 몇 마디의 (주로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의학적 용어들로만 남게 된다.
의료인의 역할은 진료 과정을 통해 의료 이용자의 주관적 호소에서 객관적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진단과 치료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로 이미 많은 검사나 객관적 정보가 잔뜩 딸려 있는 중증환자를 다루게 되는 3차의료가 아닌, 애매하고 주관적인 증상만 있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증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 1차 의료에서는 의료 이용자의 주관적 호소를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분류할 수 있어야 오히려 더욱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자 노트가 가지는 두 번째 이유는 의료 이용자와 의료인간의 "상호적인 소통"을 위한 도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진료 과정에서의 문진은 약간 취조, 또는 심문과 같은 경향이 있어 왔다.
의료인의 몇 마디 질문, 그리고 이어지는 환자의 웅얼거리는 답변.
항상, 무언가에 눌린 듯한 진료분위기가 연출되기 쉬운 이런 진료 과정이 만들어지게 되는 데에는 의료인의 개인적 특성도 꽤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의무기록이 일방적 기록이라는 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혹 친절하고 설명을 잘 해 보고 싶은 의료인이 있어 의료 이용자와 상호적으로 소통을 하고 싶어도, 의료인의 일방적인 기록으로만 존재하는 의무기록은 상호적 소통의 도구가 될 수는 없다. 의료 이용자에게 설명을 하려고 해도 기존의 의무기록을 이용해서 설명하는 것은 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 된다.
혹시 메모를 따로 해 가며 그림을 그리거나 설명을 한다 해도, 이런 메모가 의무기록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모적이고 비연속적이 된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나를 비롯해 많은 의사들이 겪어 본 일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노트는 현재까지는 여전히 의료인이 기록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환자의 상태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기록해 의료인이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의료인이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적거나 그려가며 의료 이용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는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
이런 이유들 외에도, 환자 노트에는 여러 부수적인, 혹은 더 재미있는 의의가 있지만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_-;....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환자 노트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벌써 6월 2일부터다.
환자 노트가 600권을 넘어가면서 예전의 정렬방식인 가나다순으로는 도저히 관리가 되지 않게 되어서, 번호를 붙여 다시 정리를 해 놓고는 그냥 간단하게 글을 써 보려던 것이었는데..
음음, 요즘은 점점 무언가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좀 더 자유롭게 써도 되고, 좀 더 실험적으로 써도 될 법 한데, 집중해서 글을 쓴다는 것도 어렵고 쓰기 위한 과정에서의 복잡한 생각의 얽힘도 꽤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시 글을 열심히 써 보려고 한다.
그동안 너무 조용히 있었기 때문에 속에는 여러 생각들이 켜켜이 쌓여 버렸는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풀어 보려고 한다.
(사진은 다시 정리하기 위해 다 꺼내서 쌓아놓고 찍은 환자 노트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