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닥터를 통해, 또는 별도의 과정을 통해서 지난 몇 년간 하려 했던 여러 일들 중에는 몇 년이나 

"하자, 이건 할 수 있어"

또는

"해야돼, 그러나 지금은 하지 않는거야"

또는

"지금은 못하지만, 준비해서 꼭 이걸 해 내자"

등등의 생각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던 일들이 많습니다.

현실적인 여건이나,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 되고 있다면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하고 싶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 

등에 대해서 참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정제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 고민을 하던 중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의 각각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정의들은 모두 이런 관계속에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하는 일, 또는 하지 않는 일은 아마 "하고 싶다"과 "할 수 있다"의 두 축으로 분석하는 사분면에 올려 놓을 수 있을겁니다.

1사분면, 즉 A영역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이 일은 당연히 해야죠!

2사분면, 즉 B영역은 "하기 싫지만, 할 수는 있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될 테고, 하지 않는다면 하기 싫으니까 안한다-가 되겠죠.

3사분면, 즉 C영역은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절대 하면 안되겠죠!!!

4사분면, 즉 D영역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은  '여건이 되지 않아서, 능력 부족으로, 기회가 없어서...' 마음은 원이로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각각의 일을 "한다"라고 가정하면 어떤 삶의 모습이 그려질까요?

A만 하고 사는 사람은, 행복할겁니다. 이런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운이 좋은거죠. 결과도 잘 나올테니, 성공도 하기 쉽겠죠.

 B만 하고 사는 사람은, 끌려가는 삶을 사는 겁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또는 "먹고 살려니 하는 일이다"라고 하는거죠. 하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조건, 환경이 되어 있는 한, 결과는 어느 정도 나올테니 이 상황은 아마도 견딜 수 있을겁니다. 

C만 하고 사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결과도 잘 나올 리가 없을 뿐더러, 하는 내내 불행하겠죠. 이 일을 붙잡고 있는다면 인생이 망하는 지름길을 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D만 하고 산다면, 도전하는 동안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떄문에 어느 기간동안 마음이 기쁘고 즐겁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결국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탓에 실패도 하겠죠. 

...

우리가 어느 한 성격의 일만 하고 살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사분면의 두 축은 저렇게 그려 놓기만 하면 명확하게 보이지만

마음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능력도 변하는 게 인생일테니까요.

할 수 없던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고, 하기 싫었던 일이 하고 싶은 일이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

저희처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인가?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건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사분면을 그린 뒤 그 일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일단 찍어 보고, "앞으로" 어디에 있을 것 같은지 따져 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을 확인할 때는 현실을 가감없이 반영하고 

"앞으로" 어디에 있을지 따져 볼 때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은 잘 묶어 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하기 싫은 일도 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인생이야"

그러나 만약 C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얼마나 불행해질까요. 

저는 B의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을 구별해 내는 일에 엄청나게 민감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몇 번의 선택 후에 자칫 C의 인생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음에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결국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지금 할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는 것이 결국 도전하는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도전의 결과로 어떤 것을 이루어 내었을 때, 그래서 이제는 하고 싶었던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된다면

그 때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아직 행복한 사람이 잘 되고 있지 못하지만

앞으로 이 도전을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by 김제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제닥 트랙백 1 : 댓글 0

제닥의 창가에는 거의 2년째 크고 있는 저 작고 긴 식물이 있다.

이름도 (미안하게도) 모르는, 초록의 작은 저 식물이 잘 자라 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던 중에 

저렇게나 길게 자라 준 것이 좋아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더 자라는 것을 계속 찍어서 남겨 놔야지. 우리의 시간과 함께 자라는 것일 테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불과 하루가 지난 뒤


- _ -;;

저렇게 힘없이 넘어져 있었다.

서둘러서, 바로 세워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쉬운대로 압설자를 하나 꺼내서 받쳐 세워 주고는 실로 묶어 주었다.


돌쇠, 혹은 믿음직한 땀쟁이 친구 얼굴은 덤- _ -;



그리고, 얼마 후의 결과.

짜잔.


압설자군(언제부터 君이 된거냐)에게 잘 기대어 서 있는 찰스가 되었다.(이름은 또 언제 찰스가 되었..)

..

어색한 개그는 그만하고

...

아직도 어색하다.

...........

......


이번 일(이라 하기엔 며칠 지난 일이지만)을 계기로 생각한 것이 있다면

역시 어느 정도 이상 자라면 혼자서는 서기 힘들다는 것.

기초가 정말 튼튼하고, 상대적으로 하부부터 보강하면서 자라는 방식이라면 모를까,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계속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자 한다면

어떤 식이든 함께 하고, 지지해 줄 무언가 꼭 있어야 한다.


친구를 어떤 목적을 위해 사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거꾸로 지지자, 조력자가 "우리가 우리인 모습"에 공감하고 힘을 실어 주는 것을 느끼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

이제 우리는 더욱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자라 나간다.

하지만 자라는 방향이 바뀌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우리의 자라는 방향은 하나.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자라고 있었던 것이니까.

더욱 기쁘게, 더욱 신중하게, 더욱 "우리답게"

내면을 들여다 보고, 부족함을 채우는 가장 낮은 자세로 묵묵히 자랄 것이다.

혼자서는 설 수 없음을 알기에.

by 김제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제닥 트랙백 1 : 댓글 2

김제닥은 오늘

2009.08.09 04:36 from Cafe/@미투데이



이 글은 김제닥님의 2009년 8월 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신고
Posted by 제닥 트랙백 0 : 댓글 0